선, 그리고 빛 - 본질의 그림자, 감각의 덫.
민병직(미학,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전작들의 ‘저기, 저 사물이 존재한다.’에서 더 나아가 ‘여기 이 공간이 자리한다.’로의 확장을 꾀한 여정 속에 있고, 사물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특정한 공간의 드러냄을 통해, 일상의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면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위해 평범한 일상 공간의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그 각각의 구체적인 이야기와 정보들을 지우고, 최소한의 선과 면을 통해, 지극히 중성적인 공간을 표현한다. 아니, 어떤 공간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상의 공간 자체를 단지 존재하도록 한 것인데, 유리라는 소재를 통한 빛의 적절한 드리움은 이러한 작업의 화룡정점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빛의 조율을 통해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 정지되어 있지만 영속성마저 느끼게 하는 그런 순간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공간의 드러냄은 이전 사물들이 가진 존재의 드러냄의 연장이며 확장이기도 한데, 결국 공간 또한 사물들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팝(pop)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무겁거나 진지하지만은 않은데, 대체로 작업들 속에 표현된 공간들이 동시대의 일반적인 풍경의 어법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아니라, 익숙함 속에 그저 자리하는, 일상적 존재 그 자체의 진지함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공간과 사물의 존재를 드리우는 빛 자체가 일상의 형광등이란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시대의 현상학은 결코 저 고색창연하고 심원한 곳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고,그저 그런 소소한 우리 내 세상사의 한 복판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못내 알아챘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일상의 속내를 그저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특정한 순간들을 주목케 하여, 사물들 그 자체가 스스로 발화하는, 우리를 둘러싼 저 얇고도 깊은 공간성 자체를 불현듯 조우케 한다. 그저 선과 빛으로 구축된 본질의 그림자, 감각의 덫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전시평론 중 발췌
교회 | 142×102×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 형광조명 | 2011
볕이 드리운 책상 | 83×62×8.5cm |강화유리, 샌딩, 전사필름, 형광조명 | 2011
빛이 들어오는 계단 | 102×81×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형광조명 | 2011
아침식탁 | 102×81×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형광조명 | 2011
오후의 침실2 | 102×81×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형광조명 | 2011
작업실1 | 142×102×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형광조명 | 2011
작업실 | 142×102×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형광조명 | 2011
정원이 보이는 방 | 142×102×8cm | 강화유리에 유리전사, 형광조명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