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소 - 개념의 여정 Lines of Flight


드로잉을 통한 작가 박이소에 대한 탐구
박이소는 국내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론을 소개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박이소의 작가로서의 경력은 1982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1994년까지 ‘박모’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전기와 다시 서울로 돌아와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가 뉴욕이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아시아계 이민자 작가로서의 정체성, 예술과 사회, 그리고 창작에 대한 치열한 연구의 과정이었다면, 후기에는 이러한 전기의 태도가 보다 성찰적으로 발현되어 삶과 세계, 보편적 가치를 탐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적 분류는 단순한 구분일 뿐, 박이소의 창조적 태도는 시종일관 자아와 예술, 삶, 그리고 세계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비선형적 여정이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창작의 여정에서 드로잉은 작가로서 자신을 성찰하고 작업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시키며,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근원적인 자신만의 영역이었다. 《박이소-개념의 여정 Lines of Flight》전은 전문연구원을 선정하여 박이소의 드로잉 전작을 정리하고 작가가 남긴 자료들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작가의 아이디어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낭만적인 동시에 급진적인 박이소의 선(線)
영문 전시 제목 ‘Lines of Flight’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의 용어로서 ‘탈주선’, ‘달아나는 선’으로 번역되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예견될 수 없는 새로운 접속을 추구하는 욕망과 능동적 에너지를 꿈꾸는 창조적 혹은 파괴적 선(線)으로 규정된다. ‘Lines of Fight’는 작가 박이소의 ‘작가로서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표상한다. 그는 기존 제도적 구조나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삶과 예술의 접속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제목은 그의 작업 세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적합한 용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Lines of Flight’는 선으로 구성되는 드로잉에 대한 시적이고 낭만적 의미를 함축하면서도 드로잉에 대한 급진적인 태도를 중의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개념적 키워드를 통해 재맥락화된 박이소의 드로잉
박이소에게 드로잉은 미술의 조형적 기초를 훈련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표현방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를 선언적으로 드러내는 회화적 방법론의 하나이자 아이디어를 개념적으로 구조화하기 위한 창조적 연구의 한 과정이었다. 전시는 드로잉의 형식적인 차원이 아닌, 작가의 작품 세계에 드러나는 주요 키워드를 설정함으로써 그의 드로잉을 개념적으로 재맥락화한다. 2층의 전시장에서는 드로잉과 드로잉적인 초기 회화를 통해 정체성(identity)과 자아(ego),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사회 정치적 이슈들을 선보이며, 3층 전시장에서는 긍정, 만남과 소통, 그리고 새로운 이상향에 대한 성찰을 개념 드로잉과 설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보여줄 것이다. 전시의 흐름은 그가 참여했던 전시에서 제안되고 제작 설치되었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그의 전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박이소의 작품세계는 어떤 차원에서 매우 드로잉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정주적이고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이며 동사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의 본질과 사유의 흐름이 가장 구체적인 흔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박이소의 드로잉이다. 박이소의 드로잉은 크게, 일반적 의미의 ‘드로잉(Drawing)’, ‘개념 드로잉(Drawing Concept)’, ‘설치 포트폴리오(Installation portfolio)’로 구분될 수 있다. ‘드로잉(Drawing)’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표현적이고 선언적인 (한편으로 확장된 회화라고 말할 수도 있는) 드로잉 그 자체이며, ‘개념 드로잉(Drawing Concept)’은 작업의 개념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표상하는 드로잉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설치 포트폴리오(Installation portfolio)’는 작품 제작과 설치를 위해 상황에 맞게 그가 반복적으로 수정한 설치를 위한 드로잉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이러한 드로잉적 특성을 드러내는 대부분의 작품이 선보이며 이를 통해 박이소의 사유의 지평을 확인함과 동시에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로 여겨지는 드로잉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넓혀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1층 라운지에서는 박이소 작업 세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21권의 작가 노트 사본, 박이소의 현대미술 및 드로잉에 대한 교육학(pedagogy) 자료, 작품 제작 및 설치관련 자료, 박이소가 녹음한 ‘Endless Jazz 컬렉션’ 중 일부, 그의 노래 정직성(honesty), 작가의 육필 원고 및 번역서, 박이소의 친구들이 작성한 박이소에 대한 기억들(서면 인터뷰)이 비치된다. 일명 ‘박이소와 함께 하는 라운지’로 변화되는 1층 라운지에서 관람객들은 한 작가의 삶과 예술의 여정을 구체적인 사료와 자료로서 경험하고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요”를 위한 드로잉, 2004, 30x21cm, pencil, color pencil on paper

2004년 부산 비엔날레 출품작인 <우리는 행복해요>를 위한 개념 드로잉이다. 이 작업은 언론에 보도된 북한의 정치적 선전 문구를  동시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설치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오늘”을 위한 드로잉(요코하마), 2001, 30x21cm, pencil, color pencil on paper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전시되었던 설치작업 <오늘(Today)>을 위한 드로잉이다. 이 작업은 전시장 안에서 전시장 벽을 바닥에 넘어트려 그 위에 비디오 카메라가 보낸 하늘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작업이다. 카메라의 오전 10시에서 오후6시까지 움직임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우주적 시간과 생명에 대한 어떤 지점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어떤 차원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더욱이 태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전시장에 비춘다는 점에서 태양계의 주인공이 손수 드로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한 개념 드로잉 및 설치 포트폴리오를 다수 제작했다.


쓰리 스타 쇼 Three Star Show, 1994, 120 x 148cm, mixed media 

흰 종이 위에 각각 커피, 콜라, 간장을 사용하여 세 개의 별을 나란히 그린 이 작업은 다층적인 별의 의미와 문화의 만남에 대한 차원을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별은-물론 그의 작업 전체에서 별은, 어떤 차원에서-작가 자신을 낭만화하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은유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인 유명인, 범죄인을 나타내기도 하며, 별이 갖는 고유한 문화적 의미인 죽음과 생성에 관한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커피, 콜라, 간장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다문화 조건에서의 ‘다름’과 ‘공존’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기도 하다.



 
비기닝즈 Beginnings, 2000, 각 37cm x 29cm, pencil on paper

에른스트 H. 곰브리치(E. H. Gombrich), 호스트 월드마 젠슨(Horst Woldemar Janson) 등 다섯 명의 미술사가들이 집필한 『서양미술사(History of Art)』의 각 첫 장을 필사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