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전 "厚.我.有. 후. 아. 유"

KAO110602_41x57cm_ceramic

“후. 아. 유. : 감정이 깊은 내가 있다”
‘마주침’과 ‘떨림’ 이는 나와 대상간의 관계 형성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 일 것이다. 우선, 자기 인식, 즉 자기 존재에 대한 깨달음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이 최초의 마주침으로 인해 인식의 시작, 말하자면 생각의 단초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마주침으로부터 시작된 인식은 스스로를 의심하고 묻고 대답하는 단계에 접어 들면서 지속적인 떨림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으로부터 판단이 시작된다. 이승희의 작품은 바로 그렇게 대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연속적인 마주침과 떨림의 결정체라고 해도 별반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감정 기복이 전혀 없을 것 같이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승희의 작품은 그 냉정함만큼이나 산뜻한 긴장감을 지니고 있다. 재료에서 오는 긴장감 말고도 작품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팽팽한 밸런스에서 오는 긴장감이 보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수없이 많은 흙의 레이어로 만들어지는 그의 평면 세라믹은 불과 작가의 노동력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싱크로나이징이다. 또한, 전통적인 도자기법을 활용하여 그 기법이 흔히 만들어 왔던 고전의 도자기를 평면화시키고 평면 전체를 여느 세라믹처럼 불로 구어서 만들어 지는 이승희의 작품은 단순히 입체를 평면적으로 표현했다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고전과 현대의 시간적 거리를 압축했다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간단하게 시. 공간의 압축이다. 그 압축의 작업은 원심력을 이용하여 형성되는 도자기 특유의 좌우 완벽한 대칭을 평면으로 재현하면서 발생하는 오차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작가의 철저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세하나마 드러나는 형태적 오차는 오히려 작품 전체의 냉정함을 감정의 폭이 넓은 인간적 면모를 지니고 있는 시각적 디테일이다. 여기가 바로 이승희의 도자기법이 회화로 읽혀지고 감상 되어지는 지점이다. 단정하게 놓여있는 도자기가 한없이 깊은 감정을 품고 있음이 또렷하게 보여지는 부분이다.

KAO110603_56.5_63cm_ceramic

KAO110604_26x57cm_ceramic

“후. 아. 유. : 당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현시점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듣게 되는 질문과 하게 되는 질문이 바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하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이는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하루에 수 십번을 되뇌이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승희의 작품은 바로 그 질문 질문에서 시작하여 여전히 그 질문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세라믹이 지니는 담백함으로 인해 일부러 의도하지 않는 한 색이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의 작품은 단색화에 가까울 정도로 심플하고 모던하다.
하지만 그의 평면은 두 가지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유약 없이 구워진 흙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배경 부분이 지니는 성질이고 다른 하나는 고전의 도자기 그대로를 재현해 놓은 부분이 지닌 성질이다. 이는 그의 작품을 단순히 이원적으로 구별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표면 질감에 관한 간단없는 연구를 통해 발생하는 이러한 성질의 차이는 결국 작가가 도예가의 상상력에서 화가의 그것으로 옮아가는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전환점이야 말로 작가가 끊임없이 질문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한 해답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끈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향한다. WHO ARE YOU.
 
KAO110605_46x57cm_ceramic

KAO110606_57x115cm_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