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예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글/ 박준헌(미술이론, Gallery Being 대표)
전통적으로 모든 시대의 예술가들은 방법이 어떻든 간에 자신들이 그 시대를 진실하게 보여주는 리얼리스트라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 거울이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사회에 대한 고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망해 왔고, ‘사유하는 개인’이 가지는 존엄을 긍정해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공감을 형성해 왔다. 그것이 바로 근대적 예술이 가지는 혹은 가질 수 있는 윤리의 첫걸음이었다. 반면 현대미술은 현대라는 사회 현상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시각적 예술양태로써 사회 전반을 조감하는 안목 및 철학을 갖추지 않고서는 이해 불가능한 게임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소위 컨템퍼러리라 불리는 동시대의 현대미술은 자본과 욕망의 제국이 낳은 가장 품종 좋은 우량아로 인식되고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예술이 삶에 대한 어수룩한 은총이 되어버린 지점이다. 동시대의 예술이 이처럼 초국적 자본에 의해 제도와 인간 그리고 사회에 대한 억압과 고뇌를 팽겨 칠 때 우리는 전통적으로 신봉하고 의심치 않았던 예술의 가치들에 대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고, 예술은 이제 소수(자본)의 매니아적 취향으로 변질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의 취향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이전 시대가 가졌던 공공성의 퇴행은 물론 사회의식과 관련된 예술적 의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힘들어졌고, 이제 갈수록 최선을 다해 현실(예술)을 의심하고 여기서 나타나는 진정성(윤리)이 담긴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초자본주의적 시대라 해도 숙명적으로 예술은 삶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여전히 인간의 삶에 관여할 수밖에 없고, 세상의 관점과 취향들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무언가를 인식하게 한다. 이것이 예술이 가지는 기적이자 불행이며 그래서 작품에 대한 예술가들의 사랑은 가련할 수밖에 없다. 희망이 없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은 가장 숭고”한 법이고, “무신론자에게는 희망이 신”이며, 우린 그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다.
김보중_분당야경_210X74cm_장지위에 아크릴_2008
김성호_새벽도시_ Oil on Canvas_ 210x80(cm)_2011
이시현_코스트코_광목위에 유채_89.4X145.5cm_2010
홍순명_Hiroshima.Aug 3. 2010_캔버스에 유채_117x91cm_2011
문학의 재료가 삶의 선(線)이라면, 미술의 재료는 삶의 면(面)이다. 그 단면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작가들의 역할이며, 좋은 작품은 얼마만큼 그 단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만큼 진실은 입체적이다. 작품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태도여서 어느 작품에 비해 어느 작품이 우월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작품에 대한 우리의 합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불가피한 정서적 요청이 담겨진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상상하고 이를 통해 공감의 본질을 공유하며, 지극히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변화에 헌신하는 것. 때문에 현대미술은 자신의 윤리적 책임감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고, 대중이 토론할 수 있는 공공의 의제를 부단히 제기해야 한다. 이를 외면할 경우 그 내용과 무관하게 미학적으로 보수적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고, 대중추수로 비판받게 될 것이며, 이러한 작품은 지극히 퇴행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규범에 얽매여 그것을 추종하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창조한 규범에 의해 살아가고, 남이 부가한 정당성 보다는 자신의 윤리를 통해 시대를, 삶을 반추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 하나를 획득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고뇌를 공동체의 배수진으로 확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사회가 현대미술에 보내는 시대적 요청이다. 저항이 커질수록 전구의 빛이 밝아지듯이 모든 힘의 근원은 저항에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하며, 사회에 대한 저항값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밝은 빛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김효숙_재현된 무대Ⅱ_캔버스에 유채,아크릴 채색_181×223cm_2010
이혜인_02.비정한세계_ acrylic on canvas_ 145x145(cm)_2008
하이경_커피마실까
황정희_Allegory of the moment 2_ acrylic colors on canvas_60x72cm_ 2011
이전 세대의 작가들은 사회적 저항을 자신의 예술적 자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역량이 탁월한 몇몇은 그 자양분을 통해 기어이 희망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 감동적인 작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현실의 저항을 좁은 의미로 해석해 그것이 진보라는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였다고 착각했고, 변혁에 기여하기 보다는 대중을 계몽한다는 독선을 가졌었다. 하지만 진정한 작품은 계몽하지 않음으로써 계몽하고, 진리를 대변하지 않음으로써 진리를 생각하게 한다. 주장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그냥 감정의 여실한 단면을 정확하게 최단거리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진실, 정의, 진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내면의 격량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때문에 작가는 고독하다. 이런 작품들이 던져 놓은 윤리적 의제는 언제나 손쉬운 대답을 허용하지 않지만, 작품에서 발산하는 진정성(authenticity)을 대면할 때 우리는 지금의 체계를 초월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그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