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 | 영상 | 5 min 30 sec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국제갤러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작가이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우순옥의 개인전 <잠시 동안의 드로잉>을 개최한다. 그 동안 개념적인 작업으로 한국적 여백의 미를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설치와 드로잉, 영상작품으로 그 사색적인 작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순옥 작업의 특징은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기보다, 공간이나 시간과 같이 비물질적인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구현하는 것에 있다. 일상의 순간적 시간 혹은 먼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꿈 같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잠시 동안의 드로잉’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무형의 존재에 대한 흔적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사유,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그 곳 | 비디오 프로젝션 | 2006-201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우순옥 작가의 <잠시 동안의 드로잉>展은 1993년과 2006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갖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먼 동경의 대상에 대한 꿈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지난 전시에 이어 보다 사색적이고 시적인 은유의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텍스트 작업 <우리는 모두 여행자>가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머물다 떠나는 우리의 인생을 ‘잠시 동안의 드로잉’ 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 전반에서 그 사유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 | 텍스트, LED, 합성수지, 철판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1층 중앙 공간의 작품 <12편의 신기루>는 각기 다른 12개의 영화필름에서 차용한 영상과 부드러운 들꽃 식물들을 함께 설치한 작업이다. 작가가 독일 유학시절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아온 영화들 중,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영상 이미지를 선택하여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에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노스탈지아>,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의 <파타 모르가나>, 루치아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의 <여행자> 등과 같은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화면에는 영화의 특정한 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영상 클립들은 공통적으로 존재와 부재, 장소와 기억, 판타지와 이상향에 대한 갈구를 드러내는 순간을 보여준다. 환영으로 존재했다가 금새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와 같이 이미지 혹은 잔상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를 삶과 동일시하는 작가는, 관람객들이 영상과 자연이 있는 공간 사이를 마치 미로의 정원처럼 산책할 수 있도록 하여 잠시나마 어떤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
커플 트리 W | 철, 7개의 형광등 | 170 x 71 x 71 cm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한편, 갤러리 2층의 공간은 사유의 장소로서 작가의 방을 보여준다. 이는 2006년 국제갤러리에서 있었던 개인전 <아주 작은 집>에서 기억의 장소로서의 작가의 방을 불러왔던 것과 비견될 만 하다. 영상작업 <예술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작가가 본인의 아틀리에에서 행한 사유의 퍼포먼스를 담은 것이다. 영상 속의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다가 문득 작업실을 느리게 서성이며 6세기경의 짧은 시 한편을 한 구절, 한 구절 마치 보이지 않는 영혼을 부르듯 읊조리며 발화한다. 이는 작가가 오래 전 보르헤스의 책 속에서 발견한 윤회사상이 감도는 시로서, 여기서 그는 이전 전시 <아주 작은 집>에서 보여줬듯 “무엇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본다는 것 자체가 결국 심연을 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다시 한번 묻는다. 드로잉, 오브제, 퍼포먼스 영상 등으로 구성되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각자 마음 속의 이야기를 불러내며 시적 드로잉의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2편의 신기루 | 영상 설치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우순옥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달’의 존재는 작가에게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영혼이 사는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며 어떤 깨달음의 의미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기원은 이전 작품인 <달-산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추운 겨울 한밤중에 인적이 드문 숲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따라오는 밤하늘의 달을 비디오로 찍은 것이다. 이때 가지게 된 “변화무쌍하며 덧없이 흘러가 부서져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그것의 저편에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귀한 본질은 불변하는 영원과 같은 그 무엇일 것”이라는 성찰은 작가의 이후 작품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전작 <루나 오아시스>는 달에 소형 우주 온실을 개발한다는 기사를 접한 이후 이에 대한 상상력을 펼쳤던 작업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NASA에서 찍은 달의 모습을 느리게 반복하여 보여주는 이번 영상작업 <그 곳>은 계속 변화하는 달의 모습에서 우리가 한 순간도 가질 수 없는 어떤 존재에 대한 동경을 상기시킨다.
12편의 신기루 | 세부 설치 전경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우순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장소, 기억, 존재와 부재, 기다림, 동경과 같은 가치와 의미를 마치 드로잉과 같이 쓰고 지우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형상을 만들어 나가면서, 이미 ‘없는’ 그러나 그 없음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을 환생시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2편의 신기루, 스틸 이미지, 루치아노 비스콘티 <베니스에서의 죽음> 中 | 영상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
12편의 신기루, 스틸이미지, 베르너 헤어조크<파타 모르가나> 中 | 영상 | 2011 | Courtesy of the artist